일해야 해요. 일해야 합니다.
노동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유쾌하지 않고, 인생을 그렇게 어둡게 바라보는 겁니다.
- <세 자매> 1막, 이리나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일을 해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일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일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한 가지씩 살펴보고자 한다.
재미
갓 스무 살 무렵에 '무스쿠스'라는 뷔페에서 10시부터 10시까지 일하는, 이른바 '텐텐' 근무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씻고 자고 출퇴근하는 시간을 빼면 겨우 한두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남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한 가지 다소 유치하고 단순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일은 재밌어야 한다!
거의 하루 전체를 소모해 버릴 '일'이라면, 하다못해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라도 즐거움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 이후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재밌는 일이면 계속하고, 재미없는 일이면 가차 없이 그만둬 버리곤 했다.
물론 아르바이트생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지만, 사실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가치다.
왜냐하면 직장인들도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투자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기왕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신나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일이 재밌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협업
어렸을 때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대학생 때 동기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 보면서, 또 여러 '일'들을 경험해 보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함께 힘을 합쳐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해 주는 힘이 있었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함께하는 일은 무척 재밌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있어서 '협업'은 일의 가장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을 하건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이끌어나가는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싶다.
회사에 주체라는 것은 원래 없어요.
'회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서로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얘기한 것처럼 실재하지 않거든요.
그 회사라는 주체가 사실은 옆의 동료예요.
-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
돈
일을 해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이유인데, 나는 참 이걸 소홀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간간이 재테크 책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전혀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돈에 무관심한 듯 구는 걸까?
그 이유는 첫째로는 아직도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돈을 벌어서 뭘 하겠다는 미래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개발자의 길로 전향하게 된 이유는 '돈'이다.
『부의 추월차선』이라는 책을 읽고 '추월차선의 상어'라고 표현되는 인터넷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전에 우선은 개발자로서의 '일'을 먼저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해야 할 수많은 것들과 일에 파묻혀서 살고 있다.
어느덧 나 또한 '실력을 쌓아서 연봉을 높인다!'라는 획일화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봐야 한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오직 돈만을 위해 회사에 충성을 바치고 열정을 불태워서 일할 수 있는가?
아니다. 현재로서 '급여'는 나를 일하게 만드는 동기들 중에서 가장 약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로열티 (Loyalty)
'충성'이라는 뜻이지만, 군대식 상명하복의 느낌이 들어서 영어로 썼다.
일을 하면서 걸출한 성과를 내려면 일정 수준의 로열티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회사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일에 열중할 수 있게 되고,
또 회사가 원하는 성과를 정확히 캐치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
직원이 가지는 로열티도 중요하지만,
회사 혹은 리더가 직원들로 하여금 로열티를 품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도 중요하다.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내가 충성을 바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의구심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이지만 나는 에버랜드에서 일할 때 정말로 최대의 로열티를 갖고 일했다.
어느 날 나는 에버랜드에서 퍼레이드 차량 진입 직전에 손님들이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통제를 뚫고 달려가려는 어떤 손님의 옷끈을 붙잡아서 VOC를 받았다.
상관이었던 선임님은 규율에 엄격한 분이었고 나는 이미 손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한번 제대로 혼난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차게 까이는 건 당연하고 '자칫하면 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선임님이 내게 해준 말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앞으론 그러지 마라."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충성심과 함께 일했고,
비록 업무의 복잡도가 높지 않은 편이었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일을 잘한다는 인정도 받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건대 로열티라는 것은 누군가 강요한다고 해서 심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자발적인 동기,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한데 어우러져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성과
성과는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로도 개인의 훌륭한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고, 일자리를 박탈하는 지표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꾼이라면 이 '성과'에 목을 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내게 있어서 성과라는 개념은 아직 너무 어렵다.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목표 달성,
그 사이 어딘가에서 로열티를 기반으로 성과를 쌓아 올리는 과정은 마치 행위예술과 같다고 느껴질 정도다.
아직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 올해에는 꼭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인재가 되어 그 의미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정리
아직도 혼란스럽지만 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고 싶어하는지 정리가 좀 되었다.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최적의 환경에서만 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왜 일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여기 내가 무척 감명 깊게 들은 말이 하나 있다.
일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고,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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