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객체지향의 사실과 오해』에 대한 글을 포스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한번 책 이야기를 꺼내보게 되었다.
그만큼 짧은 기간 내에 책 한 권(정확히는 두 권 시리즈)을 다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책을 먼저 읽고 있었는데 개발 공부에 대한 강박 때문에
『객체지향의 사실과 오해』를 중간에 읽게 된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내용이 아니니 각설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의 완전 팬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책의 첫 문장 <누가 날 죽였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과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님,
이 두 분의 작품들과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두 작가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던 나로써는
위의 두 가지 이유에 의해서 책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고
결론적으로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 소감
사실, 나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의 『타나토노트』에서부터 『천사들의 제국』,
그리고 『신』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서사 소설 시리즈를 다 읽어낸 독자라면
이 소설이 약간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위에서 소개한 서사 시리즈에서 죽음 이후에 인간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아주 재미있고도 자세하게 풀어나갔었는데,
이 소설 『죽음』에서도 사람의 죽음 이후에 대해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소설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았다.
죽어서 심령체가 되고 아서 코난 도일이나 나폴레옹, 토머스 에디슨, 헤디 라마와 같은
위인들을 만나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확실히 이전 작품들과 유사했지만 몇 번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님 특유의 재미요소 두 가지도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바로 작가 자신의 자서전과 같은 이야기들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과,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사실 존재 자체로도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망치거나
독자의 몰입도를 방해할 수도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었는데도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게끔 도와주고
이야기에 더 깊은 흥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소설의 내용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소설의 후반부에 다다르고 나서야
이 소설이 『타나토노트』-『천사들의 제국』-『신』과 차별점을 두는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이전 시리즈는 인간이 죽고, 환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면,
이번 작품은 환생하지 않고 떠돌이 영혼이 되기로 한 영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가 자신이 죽게 된 이유를
떠돌이 영혼의 상태로 추리하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추리'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보니
나도 나 나름대로 범인을 추측해보면서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위 아스트랄계에 속한 '정의의 창조자' 드라콘이 가브리엘의 조력자인 영매에게
범인을 귀띔해주는 장면이 나오고, 영매 뤼시는 놀란 표정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나는 내 멋대로 이렇게 추리해봤다.
'범인은 사실 나 자신?'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읽어나가다 보니, 내 상상력이 얼마나 기발하지 않고,
그동안 봐왔던 대중 매체들에 얼마나 찌들어 있었는지를 깨달았으며,
내 자신에 대해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강한 스포일러가 되니 줄여야 되겠다.
아무튼 책을 덮고 나니, 근시안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세상을 더 넓게 보게 해주는 소설이었음을 느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단지 '기발한 상상력'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상상력은 단순한 장르를 넘어서, 또한 종교, 예술, 문학, 과학 등 삶의 요소들도
아득히 뛰어넘어서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이것이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 저장하고 싶은 문구들
근본적으로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무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불멸을 확신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 1권 9p.
"웰즈, 당신은 글 전문가가 아니야,
솔깃한 주제들 덕에 운 좋게 살아남은 아마추어지.
당신과 달리 난 20세기 문학 박사 학위 소지자야.
이 자리에서 솔직히 고백하시지, 당신은 학위도 없잖아."
"맞아요. 난 도리어 그게 자랑스러워요.
타이타닉은 공부를 한 엔지니어들이 건조했지만 노아의 방주는 독학자가 만들었어요.
그런데 뭐가 침몰하고 뭐가 대홍수를 견뎠는지는 모두가 잘 알죠."
- 2권 41~42p.
네크로폰의 작동 순간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과
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브리엘에게
정답 같은 문구가 떠오른다.
<선택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 2권 111p.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 즉 화학과 물리만 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나는 물질의 표현 형태에 이것 말고 한 가지가 더 있다고,
다시 말해 세 번째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러의 교향곡 디스크를 예로 들어 볼게요.
당신이 이 디스크라는 물체를 집어 산산조각 낼 수 있어요.
하지만 분자 속 어디에서도 교향곡의 음은 발견할 수 없죠.
당신한테 물어볼게요. 대체 디스크 속 어디에 음악이 있는 거죠?"
"글쎄요."
"비물질 파동이기 때문이에요. 새를 예로 들어 볼까요.
새의 뇌세포나 DNA 어디에서도 새가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는 찾을 수 없어요.
그리고 정확히 똑같은 DNA를 가진 쌍둥이 새들도···."
"···노랫소리가 다르다는 말이죠?"
"내가 하려는 말을 금방 이해했네요.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아인슈타인의 뇌세포를 분석해 봐도 E=mc²이라는 공식은 찾을 수 없어요.
당신의 뇌와 DNA 속을 뒤져 봐요, 당신이 꾸는 꿈이 나오는지.
이게 내가 발견한 거예요.
어떠한 물리학과 화학의 도구를 사용해도 감지할 수 없는 다른 것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
이 세 번째 형태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
"그게 파동이라는 거예요?"
"그래요. 입자성은 없지만 물질에 작용할 수 있는 파동 말이에요.
가령,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나한테서 엔도르핀이 분출돼요.
새 노랫소리는 짝짓기 욕망을 일으켜 교미를 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알이 태어나죠.
E=mc² 공식은 원자력 발전소를 짓게 해 줘요.
거기서 전기를 만들어 우리 집에 불을 켜게 해 줄 수도 있고,
원자 폭탄을 제조해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깊이 따져 보면, 이 모든 것의 출발은 바로 하나의 생각이에요."
"그건 다름 아닌 파동이죠···."
- 2권 189~190p.
"그냥 소설인걸요. 허구잖아요."
"물론. 하지만 다시 말하네만,
누군가 자네의 공식을 테스트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분명히 자네 책에 나온 <불로장생의 샘> 연구소를 세우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장수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겠지.
처음에는 부자들에 한정되겠지만 서서히 일반인들로 확대될 거야.
평균 수명이 80세에서 1백 세로 늘어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얘기지.
그러다 언젠가는 2백 세가 될 거고.
수십 년 안에 세계 인구가 1백억 명에서 2백억 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는 확장이 불가능하고,
자원도 무한정 존재하는 게 아니야.
인구가 2백억 명이라는 건 먹여 살릴 입이 2백억 개고 강박적인 소비자도 2백억 명이라는 뜻이네.
당연히 이들을 위해 더 많은 물과 공기, 나무, 석유, 우라늄, 플라스틱이 필요하겠지.
마구잡이로 천연자원을 쓰다 보면 대양은 오염되고 공기는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숲은 파괴되고 야생종은 모두 멸종할 걸세.
지구는 이내 피폐한 행성으로 변하겠지."
"그게 다 제 소설 탓이라고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는 자네 생각 때문이지···."
- 2권 288~2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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