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만에 소설책!
필자는 소설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도, 요 근래에 소설책을 잘 안 읽어왔다.
개발을 시작하게 되면서 뭐랄까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만을 고르게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기존에 꾸준히 참여해오던 독서 모임에서 <브로콜리 펀치>를 주제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로 했다.
이 책은 기존에 가졌던 모임들에서도 계속 추천받아왔던 책이라 일단 사놓고 쟁여두었다가,
이번 기회에 책에 수록된 8가지 이야기들을 하루에 하나씩, 8일 동안 호로록 읽어버렸다!
빨간 열매의 맛이 느껴지는 소설
소설의 감칠맛이 대단했다.
소설들 속에는 알파벳이나 숫자들이 직접 표기되는 일이 드물었고,
심지어 대화가 존재하는데도 큰 따옴표가 거의 나오지 않거나 혹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 단편도 있었다.
그만큼 소설 속 모든 '말'들을 머릿 속에서 굴려보며, 그 '맛'을 느끼게 해주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싶다.
다른 여러 리뷰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이 소설이 가지는 뻔뻔한 환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편들 속에는 현실에서 당연히 불가능한 요소들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뻔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 많다.
말하는 나무와 이구아나, 신체의 일부가 채소가 되는 병, 외계 생명체들과의 대화, 죽은 자와의 대화 등이 그렇다.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즐겨 읽어 왔던 탓인지,
솔직히 이러한 환상적인 요소들이 엄청 색다르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뻔뻔함' 만큼은 이유리 작가님만의 독보적인 매력이 아닐까 한다.
각 단편들이 지닌 저마다의 환상적 요소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치,
"뭘 그렇게 쳐다봐?" 하고 역으로 나에게 물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뻔뻔한 재치와 함께 입 안으로 들어오는 몰캉몰캉한 열매의 맛은 달콤하고 환상적이다.
환상의 달콤한 맛은 '나'의 것이 되었을 때 쓸쓸해진다
소설의 말미에 적혀 있는 문학평론가 소유정님의 Suger High라는 글이 또 인상 깊었다.
내가 소설을 쭈욱 읽어 올 때는 각 단편이 주는 그 느낌들, 그 표면상의 맛들을 있는 그대로 맛보려고 했는데,
소유정님의 해설을 읽고 나니 확실히 이 소설의 달콤한 맛 뒤에 찾아오는 쌉싸름한 맛을 더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소설 속 단편들은, 저마다의 환상들을 품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슴 시리도록 차갑게 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사실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가정 폭력에 대한 이야기, 가게가 망한 뒤 이야기, 수영 강사로 생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열매'와 같은 맛으로 어느새 다가와서는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그 의미와 느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끔 해준다.
환상은 사실 어딘가 불완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그 자체이며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 이런 환상적 요소들을 하나씩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유정님의 말처럼,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건네주기에 훌륭한 책이다.
나 또한 위로가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필요해보여서 준비해 봤어." 라는 말 보다는,
"재미있는 책인데 그냥 한 번 읽어봐!" 라고 은근하게 속이듯이 건네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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