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동물 전문가의 생애를 담다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대부분의 삶을 야생에서 지내면서 동물들을 연구해오신 학자이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도 야생동물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작가의 노하우와 함께,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1960년대의 노스캐롤라이나 습지'라는 배경은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아주 적합한 무대가 되어주었다.
습지와 동물들은, 모두가 곁을 떠나고 동물들과 어우러져 살게 된 습지의 소녀를 다루는 이야기를 유려하게 장식해주었다.

재갈매기 부리의 붉은 반점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다.
새끼들이 부리의 그 붉은 점을 콕콕 쪼아야만 부모가 잡아온 먹이를 내어준다.
붉은 반점이 더러워지거나 안 보여서 새끼들이 쪼지 못하면
부모는 밥을 주지 않고 새끼를 죽게 내버려둔다.
자연에서도 부모 노릇은 생각보다 애매한 일이다.
새들이 주로 새벽에 노래하는 이유는
서늘하고 촉촉한 아침 공기가 자신들의 노래와 의미를 가장 널리 퍼뜨리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매력적인 소설
이 소설의 말미에는 꽤나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야기의 반전은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며 깊은 여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결말의 여운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정도로 나는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의 경험,
말하자면 소녀 카야와 고독한 여정을 함께하는 것 자체게 더욱 더 좋았다.
이 소설에서는 소녀 카야가 혼자 남겨지게 되면서 생긴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
그리고 야생동물의 유대관계를 맺는 모습들이
작가의 동물학자로서의 내공과 함께, 또 유려한 시들과 함께 흡입력 있게 다가온다.
책을 읽다보니 나 또한 소녀 카야와 함께 습지에서의 역경을 헤쳐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재밌었다.
그녀는 암울한 늪의 호수로 갔네
그곳에서 밤새도록 반딧불이 등불을 벗 삼아
하얀 카누를 저었지
머지않아 나는 그녀의 반딧불이 등불을 볼 테고
그녀의 노 젓는 소리를 들을 테고
우리 삶은 길고 사랑으로 충만하리라
죽음의 발걸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그 처녀를 사이프러스 나무에 숨기리
Visualization

사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Netflix에서 동명의 영화가 출시된 것을 보고나서였다.
영화가 이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마침 참여하고 있던 '필사 클럽'에서 필사할 만한 소재로 쓸 책들을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이 소설책의 감성적인 문구들을 필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구매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또 필사하고, 또 어젯밤에는 동명의 영화까지 감상했다.
사실 소설책을 영화화할 때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많은 부분들이 축약되고, 생략되고, 편집되었다.
어쩔 수 없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부분도 조금씩 있었다.
소설 속 카야의 모습을 보면 너저분한 모습을 하고 다닐 것만 같은데, 꽤나 말끔(?)한 느낌으로 등장했으며,
테이트와 체이스가 뭔가 그냥 일반적인 훈남들의 이미지로 그려져서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확실히 소설책을 읽으며 상상 속에서만 그려오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그 즐거움이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습지'라는, 내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공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사실 판잣집의 '포치'라는게 어떤 건지 긴가민가했는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확실하게 설명이 되었다.
그 밖에도 이 소설에는 사실 '시각화'가 필요한 소재들(깃털, 그레이트 블루 헤론, 카야의 그림들 등)이 많았는데,
영화에서 이런 소재들을 하나씩 재차 확인해나가다보니, 뭔가 머릿 속에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Book >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디 위어 - 『마션』 (1) | 2023.11.30 |
---|---|
천선란 - 『천 개의 파랑』 (1) | 2023.10.14 |
이유리 - 『브로콜리 펀치』 (0) | 2023.03.12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죽음』 (0) | 2021.05.02 |